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빈 슈뢰딩거 (문단 편집) == 업적 == 1921년 취리히 대학교에 부임하여 양자이론에 대해 연구하였다. 특히 [[보어의 원자모형]]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연구하여 몇 편의 논문을 낸다. 1922년에는 보어의 원자모형에 상대론적 도플러 효과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발표한다. 1924년 원자 스펙트럼에 대한 BKS이론이 발표되었을때 해당이론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나 결정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를 통계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처음으로 행렬을 이용하여 [[양자역학]]의 기본 이론을 제시했는데,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슈뢰딩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양자역학의 기본 이론을 제시하려고 했다. 한편 당시 대학생이던 [[루이 드 브로이]]가 자신의 교수 랑주뱅에게 물질파 가설에 대한 논문을 제출했는데, 랑주뱅은 '이딴 걸 논문이라고 낸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 논문은 아인슈타인에게 보내진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당시 조교였던 슈뢰딩거에게 보냈고, 슈뢰딩거는 그 논문을 보고 "어? 이거 괜찮은데?" 하며 그를 이용한 방정식을 찾아나선다. 역학, 특히 고전 역학은 뉴턴의 방법, 라그랑주의 방법, 해밀턴의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중 슈뢰딩거는 해밀턴의 방법과 입자의 파동성에서 착안하여, 1926년 [[슈뢰딩거 방정식|'슈뢰딩거의 방정식(파동방정식)']]을 발표하였다. 이는 [[양자역학]]의 기본이론을 새로운 방법으로 정립한 것이다.[* 뉴턴의 방법은 힘이라는 개념에 중점을 둔다면, 라그랑주나 해밀턴의 방법은 에너지의 개념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미시 세계에서는 힘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라그랑주의 방법과 해밀턴의 방법의 양자역학 버전을 개발하려고 했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해밀턴의 방법의 양자역학 버전을 개발했는데, 나중에 파인만이 라그랑주의 방법의 양자역학 버전을 개발했다. 경로 적분이 이와 연관되어 있다.] 모든 물질은 파동의 성격과 입자의 성격을 가지는데, 물질들이 가지는 파동의 성격에 대한 방정식이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다. (파동)이라는 게 붙는 이유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족하는 함수는 대개 주기성을 가지는 파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파동과 같은 성격을 띠었다고 입자가 파동 방정식에서 나온 해와 같이 진동하거나 움직이는 건 아니며 관측되는 물리량들은 정상상태(stationary state)로 존재한다. 그런데, 사실 슈뢰딩거가 파동함수를 만든 것은 분명 사실이긴 하지만, 웃긴 것은 그도 사실 '''파동함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이것 때문에 파동함수의 성격 문제로 물리학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 당시에 발터 후켈이라는 사람은 이런 시를 썼을 정도이다. "슈뢰딩거는 그의 '파동함수'를 가지고 많은 계산을 할 수 있었다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알지 못한 것은 도대체 파동함수가 뭘 의미하느냐'''였지." 입자들이 파동의 양상으로 나타날 때, 그 파동을 서술하는 것이 파동함수라는 것까지는 슈뢰딩거가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 파동의 진폭이 복소수라서,(중심축에서 멀어진 정도가 허수 i라면, 상상이 가는가?) 파동함수가 존재한다는 건 확실한데 그 자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 슈뢰딩거는 파동함수의 실수부분만이 물리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막스 보른]]이 '어떤 점에서의 파동함수의 진폭의 절댓값의 제곱, 즉 복소수의 절댓값의 제곱은 그 지점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에 비례한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막스 보른은 이 업적으로 (보다 정확히는 '파동함수에 대한 통계적 연구'를 통해) 195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표준적인 해석으로 내려오고 있다. 사실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에 대한 입장은 매우 모호했었다. 한때는 파동함수의 반실재론적 성격을 옹호했고, 1930년 [[뮌헨]]의 국립독일박물관에서 관찰에 따라 상태가 결정된다는 [[코펜하겐 해석]]을 따라 양자역학에 대한 강연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교류를 하면서 입장을 정리한 1930년대 이후로는 평생동안 결정론을 주장하며 [[파동함수]]에 대한 보른의 확률적 해석을 비판했다. 1946년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른의 이름을 대며 그의 해석을 싫어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또한 1960년 보른에게 직접 보낸 편지에서는 "저는 박사님을 정말로 존경하지만... (중략) 박사님은 역사의 심판이 걱정스럽지 않으십니까? 인류가 박사님의 어리석은 판단에 굴복할 것이라고 정말로 확신하십니까?"라는 거의 비난 수준의 비판을 했을 정도이다. 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수상의 이유는 당연히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물리학과 및 화학과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는 [[슈뢰딩거 방정식]] 덕분이다. 1935년 [[논문]] "양자역학의 현상에 대해서"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을 발표했다. 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은 원래 양자역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가 불확정성 원리를 '까기 위해서' 사용했던 비유이나, 의도치않게 비유가 너무나도 적절하게 양자역학의 이중성에 대해서 비유하는 바람에 오히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비유로 유명해졌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이러한 역설적인 결과를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내가 이런 것에 일조했다는 것이 유감스럽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1952년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아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했다. [[파동함수]]는 물리적 실재이며 간헐적으로 입자가 나타난다고 보는 코펜하겐 해석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는 완벽한 반면 입자를 통한 해석은 인위적이고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우리가 입자라고 해석하는 것들도 사실 파동묶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Schrödinger, Erwin. "Are there quantum jumps? Part I and II."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3.10 (1952): 109-123 233–242]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을 [[입자]]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려 하는 바람에 잘못된 해석이 퍼지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2차 양자화]]를 근거로 입자라는 개념없이 파동의 개념만으로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 Schrodinger, ''The meaning of wave mechanics'', in Louis de Broglie Physicien et Penseur, A. George, ed., Albin Michel, Paris, 1953 [[https://archive.org/details/SchrodingerWaveMechDublin1952]]] [[볼프강 파울리|파울리]], [[막스 보른|보른]], 로젠펠트 등의 물리학자들은 이같은 슈뢰딩거의 해석에 반발했다.[* [[칼 포퍼]],『양자이론과 물리학의 분열』 참고.] 또한 슈뢰딩거는 다른 분야의 물리학과 생물학에 공헌했다. [[열역학]]에 대한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중력과 전자기력을 합친 [[통일장 이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명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현상에 대해 양자역학을 통한 철학적이고도 본질적인 설명을 시도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후대 생물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